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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7 HCI 2009 -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13)

안녕하세요? 저는 오픈마루 UX팀의 강규영 입니다. 이 글은 저의 이야기 입니다.

HCI 2009 학술대회에 다녀왔습니다.

두 명 예산으로 셋이 참석하느라 한 사람은 3일 모두, 나머지 두 사람은 1.5일씩 시간을 배정받았는데 저는 10일 오후와 11일 오전/오후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사실은 꼭 듣고 싶은 주제가 10일 오후에 있길래 제가 좀 우겼죠. :-) 그 주제란 이정모, 이영의, 박형생 교수님의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튜토리얼" 입니다. 발표 자료는 이정모 교수님의 블로그 글에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정모 교수님은 체화된 인지 운동의 전반을 소개해주셨고, 이영의 교수님은 심리철학 관점에서 바라본 체화에 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박형생 교수님은 체화된 인지 관점에서 인식-행동의 조율(perception-action coordination)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소개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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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이 HCI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저의 생각을 간단히 소개하고, 이정모 교수님이 발표하신 체화된 인지에 대한 요약과 느낀 점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1. 현업과 학문

오픈마루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웹 관련 실무를 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 소위 "무슨 무슨 학(學)"이라고 하는 것은 실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먼저 생각 해보지 않고서는 그저 지루한 이야기일 뿐이죠.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체화된 인지 튜토리얼"은 이번 학회의 주제 중에서도 특히나 추상적이어서, 실무와의 관계를 (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좀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은 인간의 마음(mind)을 주로 지능(intelligence), 기억(memory), 지각(perception), 학습과 발달(leaning and development) 등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대단히 방대하고 학제적인 학문 분야입니다. 최근에는 정서나 감정(emotion, affection) 같은 부분으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고,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 뿐 아니라 몸이나 몸이 놓여 있는 주변 환경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하는데요, 이 중 후자 부분이 바로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의 주제입니다.

심리철학은 얼핏 보면 심리학의 철학(philosophy of psychology)일 것 같지만 원래는 마음의 철학(philosophy of mind)을 약간 엉뚱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따라서 심리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지과학의 넓은 영역 전반에 걸친 철학적 문제들을 탐구하는 분야라고 보아야 합니다. 심리철학은 마음에 관련된 여러가지 재미있는 철학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 마음과 몸의 관계는 어떠한가(mind-body problem)
  •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마음은 내 마음과 같은 종류의 마음일까(problem of other minds)
  • 자유 의지는 존재하는가(problems of free will)
  • 자아란 무엇인가(problems of the self)
등이 있습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그럼 대체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이 HCI랑 무슨 관련이 있길래 HCI 학술대회에 이런 튜토리얼을 넣었을까요?


2. 인지과학과 HCI

HCI의 H는 사람(Human)을 뜻합니다. '사람'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사람에 대한 고민이라면 전통적으로는 인간의 신체에 대해 연구하는 인간공학(ergonomics) 위주였지만,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육체적 작업보다 정신적 작업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 부분이 바로 인지과학, 특히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과 HCI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특히 사용자 중심 디자인(user-centered design) 혹은 인간 중심 디자인(human-centered design) 등이 강조되면서 HCI 중 'H'의 중요도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과 사용자 중심의 차이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하세요 )


3. 심리철학과 HCI

인지과학은 그렇다고 치고, 그럼 심리철학은 HCI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인간 중심 인터페이스(The Humane Interface)의 저자 제프 라스킨(Jef Raskin)은 심리철학이 다루는 문제들이 HCI와 별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의식의 문제를 다룬 유명한 책으로 로저 팬로즈의 "The Emperor's New Mind(황제의 새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됨)"와 데니얼 데닛의 "Consciousness Explained" 등이 있다. 비록 매혹적인 저서이기는 하지만 불행히도 인간-기계 인터페이스 설계에 활용할만한 내용은 없었다.

Two popular books that consider the subject of consciousness are Roger Penrose's "The Emperor's New Mind" and Daniel Dennett's "Consciousness Explained". These treatments, however fascinating to read, unfortunately turn out to be of no use in the design of human-machine interfaces.

--p12~13
로저 팬로즈는 수리물리학자인데 심리철학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천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데니얼 데닛은 제가 좋아하는 유명한 심리철학자입니다.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 온 적이 있는데 보지는 못했어요. 이 둘은 주로 마음(mind)의 물리적 속성에 대한 철학적 입장이 달라서 많은 논쟁을 해왔습니다(저는 물론 데닛편). 에, 그게 중요한건 아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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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팬로즈(좌)와 다니엘 데닛(우)

전 심리철학이 두 가지 측면에서 HCI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심리철학의 여러 고민들이 인지과학에 영향을 주고 인지과학이 다시 HCI에 영향을 준다는 면에서 심리철학과 HCI 사이에 간접적인 관련성을 봅니다. 두번째는 좀 더 직접적인데요, 심리철학 분야의 고민들이 인터페이스 설계자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데니얼 데닛의 지향적 입장(Intentional Stance) 이론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지향적 입장이란 우리가 어떤 움직임(물건이나 짐승이나 사람)을 바라볼 때 세 가지 수준 중 하나로 인식 및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당구공의 움직임 같은 단순한 물리적 움직임을 해석할 때에는 물리적 입장(physical stance)을 취합니다.

새의 날개나 자동차의 바퀴 등의 움직임을 해석할 때에는 설계적 입장(design stance)을 취합니다. 이 때에는 기능이나 설계 등의 관점에서 움직임을 해석하고 예측합니다. 마지막으로 지향적 입장(intentional stance)이라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의 믿음, 의지 등의 관점에서 움직임을 해석하고 예측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사람은 도형의 움직임에서도 때론 "의도"와 "의지"를 읽어냅니다

이 이론은 감성 디자인(emotional design), 컴퓨터를 이용한 설득기술(captology) 중 설득력 있는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컴퓨터(computer as persuasive social actor), 바이오모션(biomotion), 바이오미미크라이(biomimicry), 생체적 UI(organic user interface) 등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나열된 분야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사용자가 가상의 인공물의 행위를 지향적 수준에서 취급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4. 체화된 인지

이제 본격적으로 발표 내용 요약입니다...만 밤이 깊어서 짧게 해야겠어요. ㅎㅎ

이정모 교수님에 의하면 체화된 인지는 인지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혁명(paradigm shift)이라고 합니다.

과거 행동주의가 심리학에서 마음을 배제하였다면 고전적 인지주의가 태동하면서 마음을 다시 다루게 되었으나 마음과 뇌의 관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후 인지과학과 신경과학(neuroscience)이 만나서 인지신경과학(cognitive-neuroscience)을 형성하면서 마음과 뇌의 관계를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몸과 환경을 분리하고 뇌만 바라보아서는 마음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러한 인식이 바로 체화된 인지 관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따라 체화된 인지 입장에서는 뇌(brain)가 마음을 온건히 담아내는 유일한 요소로써 행동을 지휘/감독하는 중추라는 지위로부터 물러나서, 몸이나 환경 등 마음에 영향을 주는 많은 동등하게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라는 수준으로 격하됩니다.

이러한 관점은 사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것인데, 첫째 뇌를 다른 신체 기관과 명확히 구분 짓는 생리학적/해부학적 경계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둘째 몸의 상태가 마음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예를 들면 웃는 표정을 지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셋째 뇌를 비롯한 인간의 모든 신체는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진화된 결과물이라는 점 등을 생각하면 뇌와 몸과 환경을 분리하여 생각한다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지경입니다. 이정모 교수님은 이를 뇌와 몸과 환경 사이의 영원한 인지적 고리(eternal cognitive loop)라고 표현하셨습니다.


5. 체화된 인지 관점을 HCI에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

강의를 마치기 전에 '체화된 인지 관점을 HCI 분야에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셨는데요, 이를 듣고 머리 속에 몇 가지가 떠올랐었습니다. 바로 터치 인터페이스와 제스처 인터페이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Surface, 애플의 iPhone, 그리고 닌텐도의 Wii가 떠올랐죠.

이 글의 도입부에서 HCI 연구가 인간공학에서 인지공학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사실은 최근에 제스처 인터페이스 등이 급격하게 떠오르면서 인간공학이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체화된 인지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공학과 인지공학을 합친 체화된 인지공학 같은 것이 필요하려나요?

일전에 Wii 컨트롤러인 Wiimote에 싸구려 모노 스피커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보통 입체 음향을 구현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다채널(5.1 혹은 7.1 등) 스피커를 방안에 둘러치는 사치스러운 방법 혹은 더미헤드 기법(dummy-head recording) 등으로 음향을 녹음한 뒤 이어폰이나 해드폰으로 재생하는 번거로운 방법 등이 활용되어 왔는데, Wii는 이걸 아주 놀랍고 획기적인 방법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손에 쥔 컨트롤러에서 소리가 나오게 하는 것이죠.

http://www.cise.ufl.edu/~brossen/ve/images/wiimote.jpg
Wiimote. Home 버튼과 1, 2버튼 사이의 작은 구멍이 스피커.

예를 들어 컨트롤러를 휘둘러서 야구공을 맞추면 컨트롤러에서 "깡~" 소리가 납니다. 제스처 기반 인터페이스 특성상, 소리가 날 당시에 컨트롤러는 정확히 소리가 발생되어야 하는 공간상 지점에 위치하게 되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저비용으로 3D 입체 음향이 구현되는 것입니다.

제스처 인터페이스와 음향지각을 교묘하게 연결시킨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아마도 누군가의 천재적 영감에 의존한 바가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체화된 인지 관점이 확립되고 이에 기반한 체화된 인지공학 같은 것이 발달하게 된다면 이러한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일에 있어서 천재적 영감에 대한 의존도를 약간이나마 낮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런, 짧게 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또 길어졌습니다. 늦지 않게 출근하려면 이제 자야겠어요. 여기저기 링크를 좀 걸어놓고 싶지만... 정말 자야겠습니다. :-(